구상조각, 그 새로운 지평의 모색
이 영 재 ㅣ 미술평론가
김태수는 체질적으로 구상적 감각을 지닌 조각가처럼 여겨진다. 그녀의 조각세계를 보면 늘 인체에 대한 깊은 탐구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인체야말로 오랫동안 수많은 조각가 들이 즐겨 다루어 왔던 소재였으면서도 늘 우리들에게 새로움을 환기시켜 주었던 소재이다. 그만큼 인체는 선사시대부터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곁을 떠날 수 없는 소재였던 것이다. 마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그것은 늘 조각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던져주곤 한다.
김태수의 조각은 지금까지 약간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인체를 떠나본 적이 없다. 그녀의 젊은 나이를 감안해 볼 때, 인체에 대한 그녀의 특별한 관심은 습작기에 있는 많은 조각가들의 관심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에 가서 오랜 생활을 하면 서도 인체에 대해 더욱 깊어진 관심을 보여 줌으로써, 보다 보편적 시각에서 인체를 접근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조각가로서 지금까지 김태수의 여정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80년대 중반 그녀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녀는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면서 약간의 작품을 남겨 놓기는 하였다. 그러나 적어도 본격적인 작가적 의식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 는 작품들은 졸업 이후 얼마 안되어 건 너간 미국에서의 작업들에서부터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김태수는 80년대 중반에 그녀의 남편을 따라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인디애나 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서 그녀는 계속 조소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인디애나 대학의 분위기는 구상조각에 대한 관심보다는 실험성이 강한 현대미술, 그리고 미학이나 미술사와 같 은 이론적 관심이 대세를 이루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구상조각에 뜻을 둔 그녀에게는 내키지 않는 것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여기에서 미술사같은 이론적 분야에 관심을 갖게되기도 하였다.
실험성이 강한 현대미술이 주류를 이루는 분위기 속에서도 인디애나 대학에는 드물기는 하였지만 구상조각에 관심이 많은 조각가였다. 가령 쟝 폴 다리오(Jean Paul Dariau)같은 교수는 구상조각에 관심이 많은 조각가였다. 그녀는 쟝 폴 다리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쟝 폴 다 리오의 영향력에 용기를 얻어서 그녀는 국제조각협회가 개최하는 권위있는 존스톤 조각대회에 출품하게 되었고 여기에서 세차례나 입상하기도 하였다. 존스톤 조각대회는 오늘날 추상 조각의 흐름 속에 무시되기 쉬운 인체에 대한 분석적 관찰의 중요성과 이에대한 아카데믹한 탐구를 장려하고 고취시키기위한 목적에서 오래 전에 창설된 조각대회였다. 그녀의 인체에 대한 관심과 뛰어난 감각은 이 대회에서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여러차례 입상하게끔 하였던 것이다.
90년에 김태수는 뉴욕시에 있는 뉴욕 미술대학원에서 조각을 다시금 공부하게 된다. 인디애나 대학의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이론중심적 분위기와는 달리, 뉴욕 대학원은 조소의 구상적 측면을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대부분 구상조각에 대한 고조된 관심과 열기로 가득찼다. 그녀는 여기에서 깊이있게 구상조각을 공부할 수 있었는데 특히 이 대학원의 교수인 하비 서트론(Harvey Cirtron)은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오늘날 우리는 흔히 구상조각 그것도 인 체에 대한 표현은 전근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뉴욕 대학원의 구상조각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뉴욕 미술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하여서 새롭게 제기되는 흐름이었기도 하였다.
주지하듯 뉴욕미술은 오랫동안 비구상 조각이 주류를 이루 어 왔으며, 그에 대한 부정적 반응도 젊은 세대들에 의해서 점 차 고조되어 왔다. 이들 새로운 세대들은 비구상 조각에 결여 된 내용적 요소를 극복하고 인간적 관심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추세에서 인체는 다시금 조각에서 가장 중점적인 테마로 돌아오게 되고 구상조각은 다시금 미술계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 추세로 돌아서게 된다. 따라서 뉴욕 미술계의 분위기는 여전히 추상조각이 주류를 이 루면서도 그 저변부로부터는 구상조각에 대한 새로운 물결이 다시금 형성되어 왔던 것이다. 많은 젊은 조각가들은 더이상 앞만 보고 걷고자 하기 보다는 한발짝 물러서서 뒤를 바라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상 뉴욕화단에서 이와같은 저변부로부터의 새로운 움직임의 모태는 이미 1960년대의 세대들에게서부터 심어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립 펄슈타인, 잭 빈, 앤디 워 은 머지 않아 보다 독특하며 창조적 감성이 배어있는 작품들 홀 등은 추상미술이 미술계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새로운 구상미술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예고해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선구적 안목에 의해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루던 물결은 이후로 서서히 구상 미술로 되돌아 오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아직까지도 추상미술의 강력한 프로파겐다에 대응할 수 있는 미학이 제기되지 못한 상태이며, 과거 그리이스 조각이나 로댕, 부르델 류의 조각과 구분될 수 있는 새로운 구상조각의 경향이 뚜렷하게 제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이미 저변부로부터 구상조각의 열기는 상당히 확산 되어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김태수가 뉴욕에서 조각을 공부하던 시기의 뉴욕미술은 바로 이와같은 분위기가 저변부에서 형성되고 있던 시기였다. 구상조각의 새로운 기류와 그녀 자신의 구상조각에 대한 강렬한 관심이 어우러져서 그녀는 뉴욕 미술대학원에서 구상조각의 기틀을 단단히 다지게 된다. 인체에 대한 보다 분석적 탐구를 강조하는 학교의 분위기는 그녀로 하여금 한국에서와는 다른 차원으로 인체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며 해부학적 시각으로 접근하게 한다. 인체에 대한 탐구는 예술적 감성에 의한다기 보다는 차라리 과학자적 탐구 그 자체였기도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그녀는 충실히 가르침을 받았고 결국 그녀는 졸업하면서 ‘수마 쿰 라우디’라는 최고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뉴욕 미술대학원 졸업 이후 김태수의 개인사정은 다시금 한국으로 오게끔 하므로써, 졸업 이후 본격적으로 뉴욕 미술계로 진출할 수 있었던 기반을 다시금 훗날로 기약하게 된다. 한국 에 되돌아 와서 그녀는 또다른 감성을 찾고자 하였다. 다시금 그녀는 인체에 대한 한국적 감성과 미국에서의 분석적 시각을 조화시키기 위한 과정에 돌입해서 오랜 고뇌에 빠지게 된다. 미국과는 다른 역사와 정서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 다시금 적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노력은 나름대로 과거와는 다른 형상을 창출하고자 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작품들이 서사적이라 한다면 한국에 와서 새롭게 보여주고자 하는 작품들은 보다 시적이며 함축성을 띠고자 하고 있다. 최근 몇년간 그녀가 제작한 조각상들은 서서히 동 양적인 분위기와 특징들을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이들은 서술 적이기 보다는 암시적이며 나름대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대다수의 동양적 미가 그러하듯 그녀의 최근작들도 조금씩은 한국적 감성이 풍기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새로운 작품들은 아직까지 그녀의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숨겨진 세계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냈다고까지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이들 작품들은 아직도 보다 더 넓은 시야에서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인체에 대한 오랫동안의 성찰과 천부적 감성은 머지않아 보다 독특하며 창조적 감성이 배어있는 작품들을 우리들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확신한다.